비 오는 날 강아지를 보며 깨달은 한 가지
비 오는 날 산책을 하다 보면 재미있는 장면을 종종 보게 됩니다.
우산을 쓰고 비를 피해 서둘러 걷는 사람 옆에서, 한 마리 강아지가 젖은 풀밭을 뛰어다니고 웅덩이를 첨벙거리며 신나게 노는 모습입니다.
같은 비를 맞고 있는데 왜 이렇게 반응이 다를까요?
며칠 전에도 그런 장면을 보았습니다.
주인은 "거기 가지 마!" 하며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강아지는 오히려 빗속이 더 즐거운 놀이터라는 듯 신이 나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는 변하지 않았는데, 변한 것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비 오는 날 사람은 왜 걱정부터 할까
사람들은 비가 오면 먼저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합니다.
우산은 챙겼는지,
신발은 젖지 않을지,
퇴근길은 막히지 않을지,
약속 시간에 늦지는 않을지.
비는 아직 조용히 내리고 있을 뿐인데, 마음은 이미 하루 일정을 다시 계산하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비를 맞는 것이 아니라, 비가 가져올 불편을 먼저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강아지는 왜 비 오는 날에도 행복할까
강아지는 사람처럼 내일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다음 주 날씨를 미리 계산하지도 않습니다.
웅덩이는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고, 젖은 흙냄새는 새로운 세상의 냄새입니다.
비가 오는 것마저 놀이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강아지가 특별해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아마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어릴 때는 비를 좋아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비 오는 날은 오히려 기다려지는 날이었습니다.
학교 운동장에 물웅덩이가 생기면 일부러 첨벙거리며 지나갔고, 장화를 신은 날이면 발로 물을 튀기며 친구들과 웃었습니다.
비를 맞으며 뛰어놀다가 흙투성이가 되어 집에 들어가 혼이 나면서도 다음 비 오는 날을 기다렸습니다.
그때의 비는 불편함이 아니라 즐거움이었습니다.
비는 지금도 예전과 똑같이 내립니다.
달라진 것은 비가 아니라 우리였습니다.
책임이 커질수록 걱정도 함께 늘어난다
학생은 시험을 걱정하고,
직장인은 출근을 걱정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감기를 걱정하고,
자영업자는 손님을 걱정합니다.
비는 어느새 날씨가 아니라 여러 가지 걱정을 함께 데리고 오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 삶이 틀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책임이 있다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 살아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걱정이 습관이 되면 오늘보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더 오래 살아가게 됩니다.
비는 그대로인데, 우리의 마음은 달라졌다
우리는 어느새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비는 젖는 것이고,
젖으면 불편한 것이고,
불편하면 피해야 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는 동안 비를 즐기던 마음도 조금씩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하지만 비는 원래 슬픈 날씨도, 귀찮은 날씨도 아닙니다.
그저 하늘에서 내리는 물일 뿐입니다.
거기에 의미를 붙이는 것은 결국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날 산책길에서 만난 강아지는 오늘도 신나게 뛰어다녔습니다.
주인은 우산을 들고 뒤를 따라가느라 바빴지만, 강아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다시 한 번 생각했습니다.
같은 비를 맞고도 누군가는 걱정하고, 누군가는 즐깁니다.
다음에 비 오는 날 산책길을 걷게 된다면, 잠시 걸음을 늦춰 보세요.
신나게 뛰노는 강아지를 바라보는 그 짧은 순간이, 우리가 오래전에 잊고 지냈던 마음을 다시 떠올리게 해 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