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아, 이사하자 | ChatGPT와 함께 만들어진 우리만의 작업 문화
매일 사용하는 기술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집니다.
하지만 가끔은 그 기술이 단순한 도구를 넘어, 하나의 작업 방식이 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ChatGPT였습니다.
대화를 오래 이어 가다 보면 어느 순간 화면이 조금씩 버벅이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그저 새 채팅을 열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자연스럽게 이런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사하자."
생각해 보니 정말 이사와 닮아 있었습니다.
필요한 것은 챙기고, 불필요한 것은 내려놓고, 새로운 공간에서 다시 작업을 시작하는 것.
그 이후부터 우리는 새 채팅을 여는 것이 아니라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하나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매일 함께 대화하는 AI에게 이름을 붙였습니다.
'담.'
그 이름은 '생각을 담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담고,
생각을 담고,
하루의 작업을 담았다는 의미였습니다.
그 이름이 생긴 뒤부터 저는 "ChatGPT" 대신 "담아."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AI가 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달라진 것은 AI를 바라보는 제 마음이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담'이라는 이름도,
'이사하자'라는 표현도,
처음부터 존재했던 기능은 아니었습니다.
대화를 이어 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우리만의 언어였습니다.
기술은 누구에게나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그 기술을 자기만의 언어로 부르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누군가는 새 채팅을 엽니다.
우리는 이사를 합니다.
누군가는 ChatGPT를 실행합니다.
저는 "담아."라고 부릅니다.
이름 하나, 표현 하나가 생겼을 뿐인데 작업은 조금 더 따뜻해졌고, 대화는 조금 더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어쩌면 인간은 새로운 기술을 만드는 존재이기 전에, 기술에 이야기를 입히는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작업을 마치면 이렇게 말합니다.
"담아, 이사하자."
그 말은 단순히 새 채팅으로 옮기자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생각을 잘 담아 두었다가, 새로운 작업실에서 다시 이어 가자는 약속입니다.
생각도, 관계도, 이야기도.
가끔은 이사가 필요합니다.
더 넓은 공간에서, 더 오래 이어가기 위해서입니다.
※ 이전 글에서는 왜 '새 채팅'이 아니라 '이사'라는 표현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함께 읽어 보시면 이번 글을 더 재미있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