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을 놔두고 뒷문을 만든 이유
며칠 전 보안 관련 뉴스를 하나 읽었습니다.
국제적인 통신장비 업체 **Zbt…**가 만든 일부 라우터에서 백도어가 발견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8월 5일 로이터가 보도한 내용으로, 보안업체 VulnCheck 연구진이 해당 장비에서 ‘Endlessdoors’라는 백도어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20개가 넘는 모델에서 문제가 확인됐고, 전 세계적으로 최소 10만 대가 사용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업체 측은 애프터서비스를 위한 기술지원 기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평범한 보안 뉴스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제 머릿속에는 다른 장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정문을 놔두고 왜 뒷문을 만들었을까?
사람이 남의 집에 들어갈 이유가 있다면 정문으로 가면 됩니다.
초인종을 누르고 사정을 설명하면 됩니다.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숨길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집주인이 모르는 문을 하나 만들어 놓고 그곳으로 드나들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물론 실제 상황에서는 기술적인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회사의 설명처럼 기술지원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능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용자에게 알려주면 됩니다.
어떤 기능인지 설명하고, 필요하다면 동의를 구하면 됩니다.
제가 불편하게 느끼는 부분은 기능의 존재 자체보다 사용자가 모르는 통로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사용하는 물건에 내가 모르는 문이 하나 있고, 나는 모르는데 누군가는 그 문을 알고 있다면 어떨까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별로 유쾌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사람의 행동과 겹쳐 보였습니다.
남의 영역이 궁금한 사람이 있습니다.
당당하게 물어보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슬쩍 기웃거립니다.
조금 더 가까이 가고, 아무도 모르게 들여다봅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뭐라고 부릅니까?
변태라고 합니다.
여자화장실을 기웃거리는 변태를 생각해보면 아주 단순합니다.
보고 싶어서 들여다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무엇을 얻습니까?
결국 남의 영역을 몰래 훔쳐본 것뿐입니다.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저는 이 장면이 백도어라는 개념과 묘하게 겹쳐 보였습니다.
사람이 남의 영역을 몰래 들여다보려고 구멍을 하나 만들어 놓으면 변태라고 합니다.
기계에 사용자가 모르는 접근 통로를 만들어 놓으면 백도어라고 부릅니다.
물론 둘은 기술적으로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라우터의 백도어는 실제 보안 취약점이 될 수 있고, 악용될 경우 같은 네트워크에 연결된 다른 장비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 이야기를 잠시 내려놓고 보면 여전히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왜 하필 뒷문일까요?
정문이 있는데 말입니다.
정당한 목적이라면 정문을 이용하면 됩니다.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다면 굳이 숨어서 들어갈 통로를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뒷문’이라는 단어가 재미있습니다.
뒷문은 단순히 다른 출입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존재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존재 자체가 알려지지 않은 문이기도 합니다.
그 차이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영역에 접근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접근할 수 있다는 것과 접근해도 된다는 것은 같은 뜻이 아닙니다.
능력과 권리는 다릅니다.
문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다고 해서 그 문을 만들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뒷문 자체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뒷문을 만들게 하는 마음.
남이 모르는 곳을 굳이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
정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도 굳이 다른 길을 찾는 마음.
이번 뉴스를 읽으며 저는 그것이 조금 더 불편했습니다.
정문이 있는데도 뒷문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답을 찾는 것이 어쩌면 백도어라는 기술을 이해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 Reuters, 2026년 8월 5일 보도 / VulnCheck 연구 내용